의구심과 긴장을 안고 찾아간 크레스킬의 작은 교회
안녕하세요, 60대 미국 간호사입니다. 오늘은 제가 간호대(BCC) 시절, 정신간호학 수업의 일환으로 다녀왔던 AA(Alcoholics Anonymous, 단주 모임) 참관 기록을 공유해보려 합니다.
사실 제게 알코올 중독은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릴 적 옆집 아저씨의 폭력적인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술만 드시면 변하던 그 모습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 대해 그리 좋은 기억이 없었습니다. ‘전문가도 없는 민간 모임이 과연 치유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긴장감을 안고, 낙엽이 쌓인 어느 목요일 밤 크레스킬(Cresskill)의 한 작은 교회로 향했습니다.
가장 큰 장벽은 ‘영어’라는 두려움
모임 장소로 향하며 저를 가장 괴롭혔던 건 사실 ‘영어’였습니다.
‘그들의 빠른 현지 영어를 내가 다 이해할 수 있을까? 혹시 나에게 말을 시키면 어떡하지?‘
낯선 환경과 언어의 장벽 앞에서 두려움이 앞섰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마주한 반전: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강력한 ‘진심’
하지만 막상 모임이 시작되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더 중요한 건 ‘진심이 담긴 단어 하나’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내뱉는 단어들은 교과서 속 어려운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 Powerless (무력함) –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용기
- Recovery (회복) – 멈췄던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진실한 고백
- Hope (희망) – 함께 걷는 동료의 뒷모습에서 발견하는 빛
간결하지만 묵직한 이 단어들이 모임의 공기를 채웠습니다. 이론으로만 배웠던 ‘보편성(Universality)’과 ‘희망의 고취(Instillation of Hope)’가 그들의 거친 숨소리와 눈물을 통해 들려올 때의 전율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완벽한 문법보다 중요한 건 상대의 고통을 경청하려는 마음—이것이 제가 미국 병원 현장에서 살아남고 있는 진짜 ‘생존 영어’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무력함의 인정, 그리고 연대의 힘
원형으로 둘러앉은 대여섯 명의 중년 남성들. 누군가는 건강해 보이지 않았고, 방금 술을 한잔하고 온 것 같은 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치부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순간, 그곳은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닌 ‘가족’과 같은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힘으로는 술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무력함의 고백’, 그리고 더 큰 존재(Higher Power)에게 의지하며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는 모습. 얄롬(Yalom)이 말한 치료적 요인이 전문가의 처방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 현장이었습니다. 80번 넘게 모임에 나오며 성공담을 들려주는 동료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희망’이었습니다.
간호사로서의 깨달음: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마세요”
모임을 마치고 나올 때, 한 참가자가 제게 건넨 한마디가 가슴을 울렸습니다.
“당신은 다시는 이 모임에 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이 싸움이 얼마나 처절한지, 그리고 타인을 아끼는 깊은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힐데가드 페플라우(Hildegard Peplau)는 간호를 ‘대인관계적 치료 과정’이라 정의했습니다. 저는 그날, 환자의 질병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것이 얼마나 큰 치료적 관계를 만드는지 다시 한번 배웠습니다.
“완벽한 영어보다 중요한 마음의 울림, 영상으로 확인해 보세요”
도전하는 모든 분을 응원하며
따라서 중독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질병이며, 그 치유의 시작은 ‘이해와 수용’입니다. 현직 간호사가 된 지금, 저는 그때의 경험을 가슴에 새기고 환자들을 더 깊은 관심으로 대하려 노력합니다.
도전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도전을 함께해주는 동료가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시는 모든 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